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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재 원가 폭등…재고 물량 소진되는 5월 최대 고비

  • 202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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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재 원가 폭등…재고 물량 소진되는 5월 최대 고비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4.0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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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수급 원활 비축 안 돼…식품 업계 난감
대기업도 1~2개월 치 불과…조달 못하면 완제품 차질
종이 등 대체재 사용, 가격 비싸고 근본적 해결책 안 돼
정부 나프타 수출제한 등 조치 불구 공급난 해소 역부족

중동 정세 불안으로 식품 포장재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식품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나프타 가격이 올해 1월 t(톤)당 평균 595달러에서 최근 1141달러로 2배가량 폭등했다. ‘나프타’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페트병(PET) 등의 핵심 원료로 라면 봉지, 스낵 포장지, 음료 페트병 등 다층 구조의 포장재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나프타 물량의 약 45%가 통과하는 곳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은 식품업계에 다방면으로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장재 원가 상승은 제조 원가 부담을 가중해 결국 식품 가격 인상이나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지며,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의 수익성은 급격히 하락한다. 또한 포장재 재고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생산 차질이 빚어져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해졌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포장 간소화와 대체 소재 도입이 가속화되는 등 산업 구조 전반에 걸친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실제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이 확보한 포장재 재고 물량은 1~2개월 치에 불과해 사태 장기화 시 완제품 생산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장재는 평소 수급이 원활해 재고를 많이 비축해 두지 않기 때문에 업계는 비축 물량이 동나는 5월을 수급의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중동발 나프타 수급 위기로 포장재 원료(왼쪽) 확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마트 진열대에는 원가 압박을 견디며 생산된 과자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업계는 원자재 부족 사태에 대응해 포장재 경량화와 소재 대전환을 통한 위기 돌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식품음료신문)
중동발 나프타 수급 위기로 포장재 원료(왼쪽) 확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마트 진열대에는 원가 압박을 견디며 생산된 과자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업계는 원자재 부족 사태에 대응해 포장재 경량화와 소재 대전환을 통한 위기 돌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식품음료신문)

동서식품은 현재 1~2개월 치 포장재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 평소 수급이 즉시 이뤄져 재고를 많이 확보해두지 않은 탓에, 보유 재고가 소진되는 5월이 되면 수급 불안이 커질 수 있다. 롯데웰푸드 역시 재고가 1~2개월분에 불과하며, 식품 포장재는 여러 재질이 겹친 다층 구조라 이 중 하나라도 수급이 끊기면 완제품 생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심은 계열사인 율촌화학으로부터 포장재를 공급받고 있으나 약 2~3개월 치 재고량을 확보한 상태다. 포장재를 외부 업체에서 공급받는 대상도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 대기업에 포장재를 납품하는 중소 비닐·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상적인 식품 용기를 생산하는 중소업체들의 평균 가동 가능 일수는 짧게는 일주일, 길어야 보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돼 가동 중단이 임박했다. 원료값이 t당 100만 원 가까이 치솟은 데다, 돈을 줘도 물량을 구할 수 없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밀가루보다 비닐 가공비가 더 비싸지는 기현상까지 나타나며, 결국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나 ‘슈링크플레이션’ 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산업계 일각에선 비닐이나 플라스틱 대신 종이 등 임시 대체재를 찾거나, 기존에 진행해 온 친환경 포장재 다이어트(초경량 페트병 도입, 플라스틱 캡 제거 등)에 속도를 내며 원가 압박을 방어하려 시도 중이다. 그러나 종이 등 대체재 역시 비용이 비싸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가 부담에 가격 인상 여력이 크지 않아 납품 단가 인상을 소비자 가격에 온전히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해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뚜렷한 대안 없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처럼 당장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 속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ESG 경영 기조에 따라 기업들이 과거부터 선제적으로 진행해 온 포장재 절감과 대체재 전환 실적이 원가 압박을 조금이나마 방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2020년 1월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8.0 ECO’를 선봬 시장에 안착시켰고, 2024년 10월에는 10g 미만인 9.4g 초경량 페트병을 개발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대폭 줄였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도 무라벨 생수 ‘제주삼다수 그린’을 출시하고 업계 최초로 QR코드를 도입해 낱개 판매 기반을 마련했으며, 꾸준한 경량화를 거쳐 2025년 1월 전 제품 용기 무게를 약 12% 감량했다.

제과 및 가공식품 업체들 역시 불필요한 플라스틱 퇴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카스타드’ ‘엄마손파이’ ‘칸쵸’ 등 주력 제품에 사용되던 플라스틱 완충재를 전량 종이 재질로 변경했다. 오리온은 2014년부터 ‘착한 포장 프로젝트’를 전개해 과대포장을 줄이고 제품 내 빈 공간 비율을 낮췄으며, 친환경 플렉소 인쇄 설비를 도입해 잉크와 유기용제 사용량을 절감했다.

CJ제일제당은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PHA)을 자체 개발해 식품 포장에 적용했고, 스팸 캔의 상단 플라스틱 캡을 없앴다. 동원F&B는 조미김의 플라스틱 용기를 없앤 ‘양반 들기름김 에코패키지’를 선봬 시장 호평을 받았고, 캔햄 ‘리챔’의 플라스틱 캡을 제거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의 용기 중량을 줄이고, 요플레 컵 상단의 플라스틱 캡을 제거했다.

친환경 소재 도입과 물류 효율화 작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오뚜기는 친환경 수성잉크를 활용한 플렉소 인쇄를 전 제품으로 확대 적용 중이며, 진라면 등 주요 제품의 묶음 포장재를 재생 플라스틱 필름으로 교체했다. 풀무원은 바이오 페트(Bio-PET)와 수성 코팅 종이 포장재 적용 제품군을 확대하고, 두부 등 신선식품의 플라스틱 용기 초경량화 작업을 진행했다. 삼양식품은 주요 수출용 제품의 포장재 규격을 표준화해 자투리 비닐을 최소화하고, 박스 포장 시 빈 공간을 줄여 물류 효율을 높였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방위적인 예산 투입과 지원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안정화와 피해 산업 지원을 위해 총 9241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특히 나프타의 원활한 수급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보유한 석유화학기업을 대상으로 수입단가 상승분 차액의 50%를 보조하는 데 4695억 원을 투입한다. 아울러 물류비 부담 경감 등 수출기업과 석유화학 등 피해 산업 지원에도 1459억 원을 배정해 업계의 숨통을 틔운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식품 원재료 수급 관리와 할당관세 지원에 더해, 친환경 포장재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기업의 대체 포장재 개발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히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식품진흥원)은 종이, 금속, 유리 등 나프타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 포장 소재를 정리해 배포하고, 해당 소재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 리스트를 구축해 식품기업과의 연계를 지원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예산 투입과 지원책만으로는 당면한 나프타 대란을 온전히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물량 신고 의무화, 매점매석 금지 조치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유출만 막을 뿐, 이를 가공한 에틸렌이나 합성수지의 수출은 제한하지 않아 중소 제조업체가 체감하는 수급난 해소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그것보다 아예 포장지가 없으면 생산 자체를 못하게 돼 더 심각해진다”며 “공급망을 다변화해도 해외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현재로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산업계 전반에서는 대체 공급선 확보를 통한 위기 돌파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30일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t을 확보해 충남 대산 석유화학 단지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제품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달러화 외 통화 결제 시 2차 제재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으면서 도입이 성사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확보한 물량은 설비 가동률을 고려할 때 약 일주일 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동춘 LG화학 대표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국 제재 허용 범위 내에서 수급을 했고, 지금은 추가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LG화학은 나프타 수급난이 심화하자 지난 23일 연산 80만t 규모의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