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보호·고객 관리 조직 갖추고 책임자 선임을

일반인들에게는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다. 감정노동은 직장인이 고객을 응대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행하는 노동을 의미하며, 직책상 그런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기업의 고객 접점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민원 담당 직원, 판매, 유통, 식음료, 간호, 항공 승무직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서비스업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면서 감정노동 종사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소비자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법적으로 그 권리는 크게 신장해 가는 반면 고객 접점에서 응대하는 직원들은 지나친 막말과 말도 안 되는 요구, 생떼를 쓰는 갑질을 당하면서도 ‘고객은 왕이다.’라는 미명 아래 최소한의 존중도 보장받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받아 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화나 온라인 댓글, SNS 등을 통한 피해사례가 더욱 증가하고 있고 다양해졌다. 이로 인해 감정노동자 중 많은 이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하면 자살 충동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 인식한 정부와 국회는 2018년 이른바 ‘감정노동법’으로 불리는 조항(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을 신설하여 고객의 폭언,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의 예방조치, 문제 해결 등을 의무화하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 감정노동자들의 피해가 줄어들기는커녕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익명성 뒤에 숨어 자신의 감정을 몇 배 이상으로 폭발시키는 진상 소비자가 늘어 피해사례는 오히려 증가하고, 문제는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1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 건강 실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0.3%가 우울증 위험군에 속한다. 비대면 응대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고객이나 업체로부터 폭언과 무리한 요구 등을 경험한 응답자는 90% 이상이라는 수치를 나타냈고, 욕설을 경험한 비율 또한 85%였다고 한다. 심지어 성희롱 발언을 경험한 직원도 있었다. 그리고 귀나 소화기 계통, 성대 질환 등 신체 부위별로도 굉장히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제 41조 1항에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으로 건강장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가 되어 있을 뿐 사업주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또 이 법의 한계로 지적되는 것이 회사나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정노동자들이 직접 가해자를 고소하기 어렵다는 점과 대부분 기업이나 기관에서 감정노동자의 피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며, 이에 대한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사업주가 많아 이들에 대한 보호정책이 제대로 뿌리내리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는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므로 7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감정노동자의 피해 감소를 위해 정부와 국회, 기업, 사회단체들이 다 함께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은 감정노동자의 보호와 고객관리를 위한 사내 총괄책임자 선임과 조직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은 물론이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자가 즉시 개입해 2차, 3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근 각 지자체 및 정부 기관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거나 교육하는 기관이 늘고 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그 무거운 짐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민원 담당 공무원이나 교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이 각자의 대인관계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변화란 기대할 수 없다. 완벽한 매뉴얼은 없다. 어떤 매뉴얼이든 변화하는 환경과 여건에 맞춰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기업 내 전문가 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감정노동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제적 대안을 제시하며, 시스템화하도록 돕는 한국감정노동인증원이나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등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 이전에 우리 사회의 인간성 회복이 핵심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인성교육과 함께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관과 인식변화의 대전환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