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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 2026-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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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제9화 새벽 2시 37분, 수천만 원 폐기를 막은 알람
  •  이아름 식품기술사
  •  승인 2026.05.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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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온도 이탈을 15분 만에 감지한 현장
식품안전의 승부는 ‘기록’이 아니라 ‘대응 속도’에서 갈린다

새벽 2시 37분, 모두가 잠든 시간. 한 식품 제조 현장의 관리책임자 휴대폰에 짧은 경고 알림이 울렸다.
[긴급] 워크인 냉동고 B-2 온도 이상 감지. 현재 온도: -12℃.

평소 같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까지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냉동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품의 온도가 어디까지 올라가고 있는지, 현장 밖에 있는 사람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알림을 확인한 담당자는 곧바로 현장 당직자에게 연락했고, 알람이 울린 지 15분 만에 작업자가 냉동창고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확인한 결과, 냉동 설비의 압축기(Compressor)에 과부하로 인한 이상이 발생해 있었다. 내부 공기 온도는 이미 법적 기준인 -18℃를 벗어난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그 안에 있었다. 출고를 앞둔 약 3톤 규모의 냉동 완제품과 고가의 원료들이 그대로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상황을 오전 출근 시간까지 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창고 안의 공기 온도만 올라가는 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제품 자체의 심부 온도까지 상승하고, 냉동 상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냉동식품은 한 번 해동이 시작되면 조직이 손상되면서 드립(Drip)이 발생하고, 품질은 빠르게 떨어진다. 여기에 생물학적 안전성 리스크까지 더해지면, 결국 전량 폐기라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현장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정상 가동 중인 예비 냉동 설비로 제품을 긴급 이동시키고, 일부 물량은 냉동 탑차를 수배해 임시 보관했다. 새벽 5시가 되기 전, 모든 제품의 이송은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약 4,800만 원 규모로 예상되던 원가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이 현장을 살린 것은 거창한 설비가 아니었다. 이상을 감지한 순간, 그리고 그 알람에 15분 만에 반응한 속도였다.

Smart HACCP이 바꾼 것은 기록이 아니라 감지 속도

이 현장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단 하나였다. 실시간 온도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었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이라면 담당자가 하루 몇 차례 냉동고 온도를 확인하고 기록지에 숫자를 적었을 것이다. 낮 시간에는 그 방식도 어느 정도 작동한다. 사람이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상을 발견하면 바로 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다. 야간, 휴일, 새벽 시간대는 식품 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관리 공백이다. 설비는 24시간 돌아가지만, 사람은 24시간 그 앞에 서 있을 수 없다. 바로 그 틈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확대하고 있는 스마트해썹(Smart HACCP)도 결국 이 공백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24시간 온도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설정된 한계 기준을 벗어나면 관리자에게 즉시 알림을 보내는 구조다.

다만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앞서 사례로 든 ‘-12℃’라는 알람 기준값은 모든 현장에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다.

알람 기준은 현장마다 달라야 한다. 물류센터의 면적과 용적률, 설치된 유니트 쿨러(Unit Cooler)의 수량, 제품 입출고 빈도, 문을 여닫는 횟수, 보관 품목의 특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문을 열고 닫을 때 생기는 일시적인 온도 상승과 실제 설비 이상으로 인한 온도 이탈은 구분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잘 아는 관리자는 안다. 우리 센터에서는 어느 정도의 온도 변화가 일시적인 흔들림이고, 어느 지점부터가 품질과 안전을 위협하는 신호인지 말이다. 결국 알람은 단순히 기계가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현장에 맞춰 정해둔 대응의 임계점이다.

손실 규모를 가른 것은 기록의 양이 아니었다. 현장에 맞게 설계된 예방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이 만들어낸 대응 속도였다.

글로벌 기준도 ‘살아 있는 관리’를 요구한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식품위생 일반원칙 가이드라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문서를 얼마나 잘 남겼는지보다, 그 관리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특히 HACCP 계획은 한 번 만들어두고 끝나는 문서가 아니다. 주기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현장 변화에 맞춰 계속 수정해야 한다. 설비가 노후화되거나, 여름철 폭염처럼 외부 환경이 달라지거나, 취급하는 품목과 물량이 바뀌면 관리 기준도 함께 조정돼야 한다.

처음 설정한 기준을 몇 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는 시스템은 언젠가 반드시 한계를 드러낸다. 현장은 계속 변하는데 기준만 멈춰 있다면, 그 기준은 더 이상 현장을 지켜주지 못한다.

FSSC 22000과 ISO 22000 같은 글로벌 식품안전인증 역시 실시간 데이터 관리와 함께, 변화가 생겼을 때 기준을 어떻게 업데이트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수기 기록지가 아무리 깔끔하게 보존돼 있어도, 현장의 변화에 맞춰 기준을 조정하고 대응하는 체계가 없다면 그것은 충분한 관리라고 보기 어렵다.

식품안전의 흐름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고정된 서류로 방어하는 시대에서, 현장에 맞춰 계속 움직이고 수정되는 실시간 관리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

현장에서 스마트해썹 이야기를 꺼내면 가장 자주 돌아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대기업이 아니라서 그런 비싼 시스템은 부담됩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많은 대표들이 스마트 공장이라고 하면 수억 원짜리 자동화 설비나 복잡한 AI 시스템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 회사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중소 현장에 필요한 첫걸음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냉장·냉동 설비의 온도가 기준을 벗어났을 때 관리자에게 바로 알림이 가는 구조, 위변조가 어려운 디지털 데이터 자동 저장, 핵심 공정(CCP)에 대한 기본적인 센서 모니터링. 이 정도만 갖춰도 현장의 리스크는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많은 사고는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상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해서 커진다. 단 한 번의 대형 폐기 사고 비용이 기본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비용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식품업계는 시스템 구축 비용에는 민감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 비용은 자주 과소평가한다. 문제는 사고 비용이 천천히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진다.

제품 전량 폐기, 납품 지연에 따른 위약금, 거래처 클레임, 행정처분, 그리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브랜드 신뢰까지. 사고가 남기는 여파는 생각보다 길고 깊다.

새벽 2시 37분에 울린 알람은 단순한 시스템 경고음이 아니었다. 수천만 원의 폐기를 막아낸 신호였고, 현장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예방 수단이었다.

식품 안전은 결국 사고가 난 뒤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커지기 전에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고 멈춰 세울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감지 속도다.

이아름 식품기술사는...
국내 식품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국내외 유통사 및 제조사를 대상으로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적용, 컨설팅, Audit(FSSC22000, HACCP) 및 교육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식품 안전·법규·인증 기준을 중심으로 외식업과 식품 제조업 현장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실무 기준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저서 『음식점과 제조업을 지켜주는 단 한 권의 가이드』를 통해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했으며,

프랜차이즈 업태별 식품안전 관리 주체와 법·제도 보완 필요성을 분석한 논문 “The Korean food franchise industry: Diverse development and conceptual definitions of a food safety managing body”를 공동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