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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S 대상에 원료·첨가물 / 포장재에서 이행되는 간접 물질까지 포함된다.

  • 202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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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affirmed GRAS(자가결정형 GRAS)’ 끝이 보인다②-이주형의 글로벌 푸드트렌드(19)
  •  이주형
  •  승인 2025.12.1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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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 주장 시 FDA 통보…포장재 간접 물질 포함
‘no questions’ 사례도 최소한 한 번은 신고하란 뜻
국내 기업 GRAS 근거·사용 조건 일치 여부 기록을

▨ 입법보다 한발 빠른 행정, FDA GRAS 규칙 개편이 던지는 신호

이주형 전문위원(법무법인 비트 글로벌식품산업 지원실장)
이주형 전문위원(법무법인 비트 글로벌식품산업 지원실장)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상원에 발의된 「Better Food Disclosure Act of 2025」 이른바 ‘Better FDA Act’를 짚어봤다. 앞으로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GRAS)” 물질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 성분을 FDA에 통보하고, 연방 차원의 공적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통보되지 않았고 리스트에도 없는 물질이 식품에 들어 있으면 그 제품은 원칙적으로 부적합 식품으로 취급된다. 조용히 내부 전문가 패널만 돌려놓고 “우리는 GRAS다”라고 주장하던 self-affirmed GRAS(셀프 GRAS) 경로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는 내용이었다.

연방 의회에서 개별 법안 하나가 원안 그대로 통과되는 일은 흔치 않다. 입법이 시간을 끄는 사이, 행정부 쪽에서는 이미 다른 축의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FDA가 최근 ‘Substances Generally Recognized as Safe’ 규칙안을 행정부 심사 창구에 공식 회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GRAS라고 주장할 거면 이제는 FDA에 Notice(통보)를 의무적으로 내라”는 방향이다.

그동안은 GRAS Notice 제도가 어디까지나 자발적(voluntary)이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을 조금 더 안고 self-GRAS로 조용히 가느냐, 아니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FDA에 문을 두드리느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번 규칙이 예정대로 가동되면, 이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진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대상 범위다. 이 규칙의 GRAS 대상에는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원료·첨가물뿐 아니라 포장재에서 이행되는 간접 물질까지 포함된다. 그동안 포장재 쪽은 ‘FDA compliant’라는 한 줄짜리 COI와 self-GRAS 의견서만으로 넘어가는 관행이 적지 않았다. 앞으로는 포장재 안의 각 구성 성분이 21 CFR에 명시된 식품첨가물인지, 기존 GRAS 규정에 실려 있는지, FDA가 이미 검토한 GRAS Notice에 근거하는지, 아니면 순수 self-GRAS인지까지 하나씩 쪼개서 들여다봐야 한다.

둘째, 예외의 구조다. FDA는 이미 규정(예: 21 CFR 184·186)으로 GRAS를 인정했거나, 과거 GRAS Notice에 대해 ‘no questions’ 레터를 보낸 사례는 의무 통보 대상에서 빼겠다는 입장이다. 언뜻 들으면 기업에 우호적인 예외처럼 보이지만, 거꾸로 보면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새로 GRAS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 그리고 그동안 self-GRAS로만 돌려 왔던 물질들에 대해서는 최소한 한 번은 우리 책상 위로 올려라”라는 신호다.

결국 그림은 이렇게 겹친다. 한 축에서는 Better FDA Act 같은 입법이, 다른 축에서는 FDA 자신의 규칙 개편이 동시에 셀프 GRAS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법안이 끝까지 갈지, 규칙안이 어디까지 수정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두 흐름이 공통으로 겨냥하고 있는 목표, 즉 “숨겨진 GRAS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라는 방향성만큼은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이 변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지난 칼럼에서는 Better FDA Act를 계기로 ‘전수 GRAS 맵’을 만들자는 제안을 드렸다. 이제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어야 한다. 단순히 “이 원료는 GRAS다”라는 체크를 넘어서, “무엇을 근거로 GRAS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근거와 실제 사용 조건이 일치하는가”를 함께 적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원료사가 보내온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GRAS로 사용 중”이라는 문장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고, 첨부 자료로는 내부 전문가 패널 의견서와 몇 편의 논문이 전부인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면 “아, 셀프 GRAS를 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COI에 “GRAS (Self)”라고 써넣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GRAS Notice 의무화가 현실이 되면 이 문장은 이렇게 읽힌다. “FDA가 모르는 GRAS를 근거로 우리 제품을 미국 시장에 내보내겠다.”

포장재도 마찬가지다. 수출용 포장재 규격서에 ‘FDA 승인 소재 사용’이라는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적어 넣지만, 실제로는 모재(resin) 일부가 self-GRAS 메모 하나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으로는 포장재 업체에도 각 구성 성분별 규제 근거를 요구하고, self-GRAS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면 미국향 제품에서 그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 어떤 시점에 GRAS Notice나 대체 소재로 전환할지까지 미리 합의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GRAS는 단지 식품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계약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원료는 미국에서 사용 가능하다”라는 포괄적인 문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GRAS 규정, 어느 GRAS Notice, 어느 리스트 항목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 GRAS 재평가나 리스트 삭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누구에게 언제까지 알릴 것인지, 그때까지 발생한 물량과 소송·리콜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까지 계약서에 박아 넣어야 한다. 그래야 몇 년 뒤 제도 변화가 현실이 되었을 때 “그때는 그런 줄 몰랐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미국 시장에서 최소한의 방어선을 가질 수 있다.

Better FDA Act가 결국 어떻게 정리되든, 그리고 FDA의 GRAS 규칙안이 몇 % 강도로 현실에 등장하든, 한 가지 질문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당신의 원료, 정말 미국에서 합법일까?”라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고 있다. “당신의 원료, FDA가 이름과 얼굴, 그리고 사용 조건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셀프 GRAS의 시대가 저물수록, 준비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질 것이다. GRAS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후발 주자를 걸러내는 가장 정교한 관문이기도 하다.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5년 뒤의 미국 시장을 그려 보았을 때, 지금이야말로 자사 원료 포트폴리오를 다시 한번 정면으로 응시해 볼 시점이다.

“조용히 써 왔던 성분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기업만이, 다음 세대의 GRAS 질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