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기 문구와 실제 성분 불일치…‘misbranded’ 간주
환급 조건 합의…‘순·자연 그대로’ 등 표현 주의해야
장수 제품도 안심 못해…현재 라벨 3년 후 괜찮은가?
미국 시장 표시 광고 관련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미 미국에 오래 수출하고 있고, 문제없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제품에 표시 문구에 대한 리스크를 지적하고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해도, 정작 현장에서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굳이 바꿔야 하느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아마존, 대형마트, 한인 유통망 등을 통해 한국 식품들이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한 사례는 “지금까지 잘 팔렸다”라는 것이 “앞으로도 문제없다”라는 보장을 전혀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제품 자체는 안전했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사랑받아 온 유명 브랜드였지만, 단 하나의 라벨 문구로 인해 결국 1000만 달러, 우리 돈 약 135억 원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
사건의 주인공은 몬델리즈 인터내셔널이 판매하는 스낵 브랜드 ‘Wheat Thins’다. 미국 소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오랫동안 시장에 자리 잡아온 제품이다. 처음 출시된 시점은 무려 1947년. 이후 수십 년간 ‘건강한 곡물 크래커’라는 이미지로 꾸준히 사랑받았고, 몬델리즈가 인수한 이후에도 다양한 맛과 크기로 확장됐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100% 통곡물(100% Whole Grain)’이라는 문구가 강조된 패키지를 출시하면서 불거졌다. 이 문구는 제품 전면 상단에 큼직하게 배치되었고, 측면과 후면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였고, 브랜드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지점은 바로 이 표현이었다. 제품의 원재료명을 살펴보면, 통곡물은 포함되어 있지만 옥수수 전분 등 정제 곡물도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100% 통곡물’이라는 표현과는 명백히 어긋나는 구성이다. 소비자들은 이 문구를 보고 제품이 오직 통곡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고, 더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이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표기 문구와 실제 성분 사이의 불일치가 결국 기만의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다. 특히 ‘100%’라는 절대적 표현은 통상적으로 “다른 것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라는 의미로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문구가 강조된 위치에 반복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제조사로부터 사실상 건강성을 보장받았다고 해석한 것이다.
미국 규제당국은 ‘100% Whole Grain’이라는 문구 자체에 대해 구체적인 법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FDA가 2006년 발표한 산업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00% 통곡물’이라는 표현은 제품에 포함된 모든 곡물 성분이 통곡물일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정제된 곡물, 곡물 전분, 혹은 통곡물이 아닌 밀가루가 일부라도 포함되어 있을 경우, ‘100%’라는 단어는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적용된 법적 근거에는 FDA의 라벨링 강제 규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실제 소송에서는 연방 및 주 차원의 소비자 보호법과 허위광고 관련 법률이 함께 적용되어 판단이 내려졌다. 특히 FD&C Act 제403(a)항은 “표시가 거짓이거나 소비자를 오도하는 경우 해당 제품은 misbranded, 즉 잘못 표시된 제품으로 간주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건강 클레임이 아닌 일반적인 표시 문구에도 적용되며, 소비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 이번 소송의 핵심이 됐다. 여기에 더해, 소비자 집단소송에서는 각 주의 소비자 보호법, 묵시적 보증 위반, 허위·기만 광고 관련 판례들이 함께 인용되며 소송의 정당성이 강화되었다.
소비자들은 이 표시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100% 통곡물’이라는 문구를 믿고 건강한 제품이라 생각해 반복적으로 구매했으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거나 더 낮은 가격을 지불했을 것이라는 것이 원고 측의 입장이었다.
해당 제품은 수년간 FDA나 세관(CBP) 등에서 수입 문제없이 통관되었고, 리콜도 없었으며, 안전성 이슈도 제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델리즈는 2025년 2월, 1000만 달러의 소비자 환급 및 표시 개선을 조건으로 합의했다.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피할 여지가 크지 않았고, 장기화된 소송으로 인한 변호사 비용 부담, 미디어 주목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타격 등을 고려해 전략적 합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몬델리즈는 ‘100% Whole Grain’ 문구를 삭제하거나, 소비자 오인을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 설명을 병기해야 한다.
이 사건이 한국 식품기업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미국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다’라는 사실은 리스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특정 문구나 마케팅 표현이 소비자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일 경우 피해 규모는 더 커진다.
현재 미국에 수출되고 있는 수많은 한국 식품 제품 중에서도, ‘100%’, ‘순(純)’, ‘오직’, ‘자연 그대로’ 등 절대적 표현이 라벨 전면에 강조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경우 국내 감각과 마케팅 관행에 기반해 작성된 표현들이지만, 미국의 소비자 보호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한국 기업이 직접 제작하지 않았더라도, 현지 벤더나 유통 파트너가 작성한 표시 문구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은 제품을 소유한 기업이다. 즉, 원칙적으로 광고주인 수출 기업이 모든 표시광고상의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또한 관행상 ‘현지 유통사가 알아서 했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는 법적 책임 분담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도 함께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 확인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지금 팔고 있는 그 라벨은 3년 후에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다.
해당 제품은 수십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팔리던 제품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문구 하나로 인해 135억 원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미국 시장은 ‘현재까지 문제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문제될 수 있는 것’을 경계한다. 수출 기업에게 진짜 중요한 건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없이 오래 팔릴 수 있는지다. 지금이라도 라벨을 다시 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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