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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 장류 연구가 故 이한창 박사를 기리며

  • 202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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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 장류 연구가 故 이한창 박사를 기리며-C.S 칼럼(538)
  •  문백년 부회장
  •  승인 2025.12.1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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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간장’ 개발 간장의 대량생산 시대 열어
장 문화 학문적 탐구 산업화와 전통 균형도
문백년 부회장(한국식품기술사협회)
문백년 부회장(한국식품기술사협회)

2년 전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 이한창 박사는 한국 식품산업, 특히 장류 분야의 현대화를 이끈 선구적 식품과학자였다. 그는 한국식품기술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장류 연구와 후학 양성, 산업 기반 강화에 바쳤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식품연구소로 알려진 샘표식품 연구개발부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전통 양조간장 중심이던 국내 간장 시장에 ‘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간장 제조는 콩을 사용한 장기 발효 방식이 주류였고, 이는 생산 속도·비용·대량 공급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한창 박사는산분해 단백질과 콩을 적절히 조합한 혼합간장을 개발하며, 간장의 대량생산 체계를 여는 결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실험실 이론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었다. 혼합간장의 탄생으로 식품 제조업체와 가정은 더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간장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간장은 일상적 조미료로서 자리를 확고히 잡게 되었다. 단기간 생산이 가능해진 덕분에 가공식품 산업에서도 간장의 활용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는 한국 식품산업이 현대 공업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발효학의 대가, 전통 장류의 아버지라 불리울 만큼 장류 및 전통 발효식품 분야에 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씨간장, 장독대, 메주와 같은 우리 장문화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해 왔다.

그러나 그는 산업화만을 추구한 연구자는 아니었다. 이화여대·경희대·동덕여대 등에서 겸임·연구교수로 활동하며 후학을 길러냈고, 장류의 이론·역사·제조 기술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적 저서 ‘장보’를 펴내 전통 장 문화의 학문적 체계를 확립했다. 산업화와 전통의 균형을 고민한 학자였던 셈이다. 발효와 숙성의 철학, 장독대 문화가 지닌 삶의 의미까지 기록하며, 장류 산업의 미래가 단지 ‘빠르고 싸게 만드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

2022년 그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식품안전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이러한 공적이 재평가된 결과였다. 특히 오늘날 ‘산분해 간장은 간장인가’ 하는 분류 논의 속에서 이한창 박사의 기여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은 전통 방식과 달리 단기간 생산이 가능하고 가격 경쟁력이 높아, 국민 식탁과 산업 전반에 안정적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전통 양조 방식만 고집했다면 간장은 여전히 고비용·저효율 그리고 품질 편차가 심한 상품에 머물렀을 것이고, 일상적 서민 간장으로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개발은 ‘간장’이라는 범주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간장은 발효만을 고집해야 한다는 인식을 넘어, 다양한 기술과 원료를 활용한 조미료로 발전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을 확보했다. 이는 한국 식품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간장 또는 소이 소스(Soy Sauce)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만든 토대이며, 한국 장류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도 되었다.

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을 둘러싸고 향미, 건강성, 소비자 인식 등에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적 현실과 국민 식생활을 고려하면, 그의 연구가 한국 간장을 전통의 유산에서 현대 식품공업의 한 축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이한창 박사가 구축한 기술·지식·산업화의 유산 위에서 오늘의 간장 산업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가 남긴 ‘균형의 지혜’ 전통을 존중하되 산업의 발전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