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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 완전표시제 시대의 개막

  • 2025-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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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 완전표시제 시대의 개막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5.12.0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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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원재료서 표시 변경까지 전과정 영향
전문가 과학적 사실-사회적 인식 간 간극 좁혀야
과학적 기준·의사 소통·정확한 분석 기술 갖춰야 실효성
국내 표시 기준, 비관세 장벽 안 되게 국제 기준과 조화를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GMO 완전표시제가 통과되면서, 우리 식품 안전 정책은 “과학적 사실의 제도화”라는 오래된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GMO(유전자재조합) 기술은 이미 30년 전 상업화됐고, 국제기구(Codex), 미국 FDA, 유럽 EFSA 등은 위해성 평가의 과학적 틀을 확립해 왔다. GMO 완전표시제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식품 안전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사회적 요구가 제도화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표시 확대가 아니라 식품표시 체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결정이며, 결국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운영 없이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따라서 GMO 완전표시제의 성공적인 정착은 산학연관이 과학적 기준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중심에 놓고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제도의 취지를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먼저 산업계의 대응이 가장 시급하다. 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되면 원재료 관리, 공급망 추적, 분석 시험, 표시 변경 등 식품 제조 전 과정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대두, 옥수수 등 GMO 사용 비중이 높은 제조업체는 ‘GMO 여부 확인’이라는 새로운 필수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표기 문제가 아니라, 원료 수입 단계에서 Non-GMO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동일 공장에서 GMO와 Non-GMO 원료를 생산할 때 교차오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 실무적 과제가 포함된다.

산업계가 구축해야 할 핵심은 원료 관리의 ‘과학적 검증 체계’다. 원산지나 문서 검토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실제 제품에 포함된 GM 성분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석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성·정량 PCR, 이벤트(event)-specific 분석, 신형 GM 검출을 위한 스크리닝 시스템 등은 이제 연구실 수준이 아니라 산업계의 기본 운영 기술이 되어야 한다. 교차오염을 수치화하는 위해성 평가 모델, GMO·Non-GMO 생산라인의 공정 분리, 실시간 공정 모니터링 체계 구축도 필수적이다.

식품기업은 분석법 검증, 생산라인 분리, 문서화된 검증 체계 등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를 비용 증가로만 해석한다면 제도 정착은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공정관리 체계를 갖추는 과정은 품질과 식품안전관리 수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어올리는 기회다. 비용 부담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투명성 강화, 기업 신뢰도 향상, 수출 역량 확보 등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

다음으로 학계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GMO 안전성 문제는 과학적 사실, 사회적 인식, 윤리적 가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학계는 이 간극을 좁히는 중추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학계는 독립성과 중립성을 바탕으로 GMO 안전성 연구, 소비자 인식 조사, 제도 도입 효과 분석 등 근거 중심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또한 산업·정부가 현장에서 겪는 문제에 과학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소비자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정보 공백이 생길 때는 과학이 아닌 불안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연구 및 시험·검사 기관은 제도 실행의 기술적 기반을 담당한다. GMO 완전표시제의 성공은 분석기술의 신뢰성 확보에 달려 있다. 분석기관 간 결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숙련도 평가(Ring test), 표준물질 보급, 분석법 검증 프로토콜 확립이 필수다. 더욱이 GM 작물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여러 형질을 동시에 가진 제품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 단일 이벤트 검출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비표지 기반(non-targeted) 탐지법 등 첨단 분석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규제 준수뿐 아니라, 향후 국제 분쟁 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데도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규제기관은 GMO 완전표시제를 과학적 근거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표시 기준이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과학적 실현 가능성을 근거로 설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표시 기준치(threshold)를 몇 %로 정할지,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유전자 가위 기술을 표시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도 논의해야 한다. 또한 급격한 제도 변경이 산업계에 큰 부담을 주므로 충분한 유예기간, 기술 지원, 분석 인프라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 글로벌 무역환경을 고려해 우리 표시 기준이 비관세 장벽이 되지 않도록 국제기준과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 역시 필수다.

GMO 완전표시제는 단순한 ‘표시 확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식품안전시스템을 과학과 근거 기반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소비자의 신뢰는 어느 시대나 식품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준, 투명한 의사소통, 정확한 분석기술이라는 세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감정이 아닌 데이터, 추정이 아닌 검증, 단순한 홍보가 아닌 과학적 설명이 중심에 설 때 GMO 완전표시제는 위기가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모범적 기회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