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 표시 적용 재정의…성분 강조할 땐 원료명 옆에 숫자
향료로 풍미 낸 제품 사진 사용 불가…‘그림은 참고용’ 안내

중국의 식품 라벨 규제가 ‘무엇을 쓰느냐’에서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GB 7718-2025는 문구 몇 줄을 바꾸는 지침이 아니라, 정보를 설계·운영·검증하는 방식 전부를 손보라는 것이다. 라벨은 더 이상 인쇄물로 끝나지 않는다. 스캔하면 곧바로 핵심 사실이 열리고, 온팩과 전자 정보가 항상 일치하는 운영형 라벨이 새로운 상식이 된다.
디지털 라벨이 그 출발점이다. 도입 자체는 기업 재량이다. 그러나 채택하는 순간 실물 라벨과 동시에·동일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스캔 첫 화면에 광고나 가입 유도 없이 식품명·알레르겐·날짜·보관 조건·사업자 연락처 등 핵심 정보를 즉시 노출해야 한다. QR 옆에는 이것이 법정 정보의 진입점임을 알리는 ‘디지털 라벨’ 표기를 둔다. 일부 항목은 전자 라벨로 이전해 온팩을 간소화할 수 있지만, 그만큼 항상 최신·항상 일치라는 운영 책임이 뒤따른다. 이제 디자인 파트만의 과제가 아니다. 품질, 법무, IT가 한 테이블에서 버전·로트 연동, 변경 이력, 접근성, 보안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표현 자체에 대한 규제도 명확해졌다. 의학적 효능을 암시하는 시각 요소는 금지다. 구체적으로 심장·혈압계·심전도 라인·청진기/의사 가운 같은 의료 연상 그래픽, ‘면역력↑’ ‘혈압 DOWN’과 같은 아이콘·배지·색상 코드는 질병 예방·치료 또는 보건 기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본다. 규제 대상은 문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레이아웃·색 대비·픽토그램·배치 등 시각 설계 전체가 평가 대상이다.
‘무첨가·제로 첨가’ 원칙적 금지…알레르기 권고서 ‘의무’로
활성 균주 잔존 땐 ‘균주명’ - 효소 기능 남으면 ‘첨가물’ 표기
2027년 3월16일 시행…국내 기업 활용 잘 하면 선택 앞당겨
정량 표시(QUID)의 적용 범위도 재정의됐다. 2011판은 ‘특색/가치 있는 원료를 강조할 때’라는 제한적 전제 아래에서 요구되었다면, 2025판은 강조의 수단과 범위를 넓혔다. 전면·제품명·배지·아이콘·대문자/색 대비·컷아웃 이미지 등으로 원료/성분을 부각하는 경우, 성분표에서 해당 원료명 옆에 함량(%) 또는 첨가량을 숫자로 표기해야 한다. 복원·농축 원료는 원물 환산 근거를 갖추는 편이 안전하다. 요지는 간단하다. 강조하면 숫자로 증명한다. 이 문법을 지키면 전면의 감성은 성분표의 이성으로 검증된다.
풍미 이미지는 특히 오해가 잦은 영역이다. 향료만으로 풍미를 낸 제품은 실사 사진을 쓸 수 없다. 필요하다면 삽화만 가능하며, 이미지 인접 위치에 “그림은 맛 참고용” 같은 안내 문구를 식별 가능하게 둔다. 실제 원료를 투입한 제품은 해당 원료의 실사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텍스트·배지 등으로 그 원료를 강조했다면 QUID(함량 %·첨가량)를 성분표에 함께 제시해야 한다. 소비자가 전면을 보고 기대한 내용이 성분표의 숫자로 곧바로 확인되도록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표현의 경계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가 ‘무첨가’다. “무첨가/불사용/제로 첨가” 같은 공정 표현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대신 영양 함량 주장으로 전환한다. 전면 문구와 영양성분표의 수치는 일치해야 하며, 내부 시험법과 결과를 근거로 보관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소비자에게 유리해 보이는 주장일수록 데이터가 말을 해야 한다.
알레르겐 표시는 권고에서 의무로 올라섰다. 원재료명 내부에서 구체 명칭이 드러나게 하거나, 원재료명 인근에 전용 블록을 두어 “알레르기 유발 물질: 우유, 대두”처럼 한눈에 보이게 배치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복합 원료 비중이 25% 미만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교차오염 경고(“…를 포함할 수 있음”)는 기업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실제 관리와 위험평가가 뒷받침될 때만 신중히 쓰는 것이 맞다. 알레르겐 ‘함유’ 표기와 ‘가능성’ 표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미생물과 효소 표기도 달라졌다. 활성 균주가 최종 제품에 잔존한다면 구체 균종명(가능하면 균주번호·균수)를 표기한다. 비활성/멸균이라면 미표기 가능하지만, 표기하는 경우 ‘비활성/멸균형’임을 명확히 밝혀 소비자 오인을 막아야 한다. 효소는 최종 제품에서 기능이 남으면 식품첨가물로 전개 표기하고, 공정 중 비활성이라면 생략이 허용된다. 복합첨가물 안에서도 실제로 기능하는 성분은 개별로 드러내는 방향이 원칙이다.
일자 표기도 통일된다. 표기 순서는 연–월–일 하나만 허용된다. 보존 기한이 6개월 이상인 제품은 만료일 단독 표기를 선택할 수 있어 실무 유연성이 생겼다. 최대 표시 면적 ≤ 20㎠ 소형 포장은 온팩·전자 라벨·외포장·설명서를 조합해 표시 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 다만 첨가물 표기에서의 소형 기준(≤ 60㎠)은 별도로 운용되어, 이 경우에 한 해 기능분류명+INS 단독 표기가 허용된다. 목적이 다르면 임계치도 다르다. 면적·기능·매체를 함께 보고 설계를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첨가물 명칭 체계는 통용 명칭(구체 명칭) 우선이 원칙이다. 일반 포장에서는 기능분류명만 혹은 INS만으로 뭉개지 않게 하고, 같은 라벨 안에서 한 가지 형식을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한다. 알레르겐을 유발할 수 있거나 INS가 없는 물질은 구체 명칭으로 써서 소비자가 바로 식별할 수 있게 한다.
한국 수출기업이 당장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갭 분석이다. 강조-정량(QUID), 알레르겐, 금지 표현, 수입 전용 항목(GACC·원산·역산 날짜)부터 체크리스트로 돌려야 한다. 둘째, 디지털 라벨 파일럿이다. 도입은 지금도 임의지만, 채택하는 순간 실물과 동시·일치, 첫 화면 핵심 정보, 광고 배제 같은 운영 기준이 바로 따라붙는다. 셋째, 수입 라벨 패키지의 상시 운영이다. GACC 번호 위치, 원산/충전국 병기, 역산 날짜 템플릿, 외국어 대체 문구(무첨가 → 무당 등)를 표준화하면, 제품 하나가 바뀌어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변화는 규제의 강화로만 읽히지 않는다. 신뢰의 표준화다. 제조자·수입자·플랫폼·감독기관·소비자가 같은 데이터와 같은 화면을 보는 순간 거래비용은 줄고, 좋은 제품은 더 빨리 자리를 잡는다.
라벨은 과장이 아니라 약속이고, 약속은 수치와 화면으로 이행된다. 지금은 디지털 라벨 도입이 임의처럼 보이지만, 금지 규칙과 ‘강조하면 수치로 증명’하는 문법은 이미 의무의 언어다.
시계는 2027년 3월 16일을 가리킨다. 지금부터 라벨 전수 진단, 다음은 디지털 라벨 첫 화면 표준화, 마지막은 수입 라벨 패키지 잠금. 인쇄에서 운영으로, 감각에서 수치로. 이 전환을 먼저 체화한 기업이 중국 소비자의 선택을 앞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