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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불닭볶음면’ 리콜 사태를 해결한 식약처 규제 외교

  • 202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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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발 ‘매운 불닭볶음면’ 리콜 사태를 해결한 식약처 규제 외교의 힘-하상도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4.08.1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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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업체 안전관리에 식약처 발 빠른 조치 결실
과학적 데이터 기반 체계적 대응 수출 애로 해소

지난 6월 11일(현지 시각) 덴마크 수의식품청(DVFA)이 삼양식품의 매운볶음면 3종을 ‘너무 맵다’라는 이유로 리콜 조치했다. 삼양식품은 이에 대해 즉각 DVFA에 불닭볶음면 캡사이신양 측정법의 오류를 지적한 반박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장급 실무진으로 구성된 민관 협력 정부 대표단을 구성, DVFA와 대면 미팅을 통해 위해 평가 재실시를 끌어냈다. 결국 지난달 15일 DVFA는 불닭볶음면 2X 스파이시, 불닭볶음탕면에 대한 리콜을 해제했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삼양식품의 2023년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34% 증가한 8093억 원을 기록했는데, 바로 불닭볶음면이 일등 공신이다. 현재 삼양식품 해외 매출의 80% 이상이 불닭 브랜드에서 나온다. 또 전 세계에 판매된 불닭볶음면은 작년에만 9100만 개에 이르는데, 세계 인구가 약 81억 명이니 지구상 100명 중 1명이 먹어 본 셈이다. 게다가 주요 증권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유럽 지역을 필두로 글로벌 수출 잠재력이 남아있다고 한다. 올 하반기 들어서도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7월 20일 누계 기준 K-라면 수출액은 764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 식품업계는 제품의 리콜 발생 때 그 제품 자체의 위해성, 심각도의 크기에 걸맞은 소비자의 대응과 처분을 기대한다. 혹시라도 심각성이 낮거나 심지어는 안전 이슈도 아닌 데도 그릇된 오해로 인해 미디어나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걱정한다. 우리 정부 역시 K-푸드에 불필요한 노이즈가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 대응에 신경을 쓰고 있다. 자칫 K-푸드 전체, 한국산 제품 전체로 확대돼 무역장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식약처는 DVFA의 회수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매운볶음면의 인체 위해를 우려한 덴마크 측의 위해 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우리는 매운맛 라면 스프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을 전부 다 먹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매워 라면을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조리 시 매운맛 스프를 모두 사용하지 않고 일부만 넣기도 한다. 게다가 휘발성이 강한 캡사이신은 가열조리 과정에서 양이 줄어들기도 하고, 매운맛 소스가 상당량 그릇에 묻어 남게 되므로 스프를 전부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현실적 섭취 상황을 고려한 캡사이신의 과학적 위해 평가 보고서와 제품 조리과정 영상 등 근거자료를 덴마크 측에 신속히 제공했다. 이에 DVFA는 위해성 평가를 다시 진행해 2개 제품에 대해 총 캡사이신 함량이 안전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리콜 조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불닭볶음면 3X 스파이시(Buldak, Hot Chicken 3X Spicy) 제품의 경우는 아직 리콜 유지 상태다. 이에 화답해 삼양식품도 불닭면에 매운맛 캡사이신의 양과 건강 영향에 대한 주의사항을 표시하는 방안을 발 빠르게 마련 중이라고 한다.

이번 덴마크발 K-푸드 리콜 철회는 국내 식품기업의 높아진 안전관리 대응과 식약처의 ‘규제 외교’ 역량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식품안전 당국의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 대응은 K-푸드 수출 애로를 해결한 대표적인 규제 외교 성과다.

지난 2021년 8월 연쇄 리콜 사태 당시에도 민첩한 대응이 주목받았다. 당시 유럽연합(EU)으로 수출됐던 라면에서 2-클로로에탄올이 검출돼 대만, 태국 등지에서 리콜했던 일이 있었다. 이후 식약처가 국내 라면에 대한 에틸렌옥사이드(EO) 관리를 강화하고, EO 저감화를 위한 업계의 노력 등을 EU에 적극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신속한 규제 완화를 끌어낸 바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규제기관장협의체(APFRAS)를 만들어 11개국의 의장국으로 올해 2번째 총회를 이끌고 있다. 이런 식약처의 규제 외교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이는 앞으로 K-푸드 수출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3종에 대한 리콜은 식품의 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근시안적 행동이다. 정부는 시판 식품에 대해 캡사이신 등 개별 성분의 양과 건강 영향에 대한 주의사항을 표시토록 하고 소비자는 구매 시 표시를 읽고 판단하면 된다. 즉, 이번 덴마크 매운 불닭면 리콜 사태는 국가가 나설 일이 아니라 시장에서 ‘표시에 기반한 소비자 선택의 문제’로 풀어야 할 일이었다.